이종실선교사

형제단(Jednota Bratrska)의 교회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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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에서 체코종교개혁이 중요한것은 17세기 30년전쟁 이전까지 보헤미아 지역은 개혁그룹들의 강력한 세력으로 인해 다른 서유럽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종교재판의 활동이 약하여서 남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왈도파 개혁그룹과 북프랑스 지역의 피카르디 개혁그룹 심지어 16세기에는 재새례파 개혁그룹에게 까지 보헤미아 지역이 그들의 피신처 역할을 하였기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대륙의 각 개혁그룹들이 자신의 개혁 신학과 프로그램을 함께 교류하고 서로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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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년 얀 후스의 죽음이후 프라하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과격하고 폭력적인 시위가 벌어진다.  그러나 체코 개혁파인 소위 후스파로 불리운 이종성찬주의자들 사이에 투쟁노선이 갈리어 타보르파와 프라하파로 나뉘어진다. 1432년 바젤 공의회의 보헤미아 지역에서 이종성찬을 허락하는 결정은 강경파인 타보르파의 세력을 제한시켰고 결국 온건파와 강경파가 리판에서 전투를 벌려 강경파가 패한다. 1453-54년에 페트르 헬치츠키 개혁자는 자신의 저술에서 교황 가톨릭주의를 비판하듯이, 후스파 이종성찬 교회를 비판하였다. 그는 종교적 정치적 갈등의 해결에서 폭력을 일체 거부하였다. 이 개혁자의 사상의 토대위에서 르제호르시 개혁자가 그 어떠한 종교적 명분일지라도 일체의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들인 <<형제단 >>을 1457년에 출현시킨다. 이들 후예들이 기독교 선교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한 모라비안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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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단은 기존의 전통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외적요인으로 인해 출현하게 되었고 동시에 보헤미아의 이종성찬 교회와도 분리되었다. 그래서 형제단의 이슈는 “올바른 그리스도 교회”였다. 이러한 과제는 형제단의 신앙고백에 잘 표현되어 있다. “모든 신자는 거룩한 교회의 더 순결한 부분이 되도록 해야하며, 거룩한 교회를 주목해야한다…” 이와 관련하여 형제단은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교회”라는 용어를 유일한 진리의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남겨두고 자신들은 “형제애”의 특유의 조직으로 “단(團)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오늘날 “교단 (denomination)”에 비교할 수 있다.  이처럼 그들은 서로 하나의 유일한 거룩한 교회 공동체로 동일시하는 권리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조직으로서 연합된 신자들의 공동체의 자기인식으로서 “교회”가 아닌 “단”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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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의 교회 개념은 위클리프와 후스 개념으로 부터 비롯된 거룩한 공동체 교회였다. 교회는 하나이다. 교회는 어떤 지상의 조직과도 동일하지 않으며, 인간의 활동이 아니다. 교회는 모든 부름받은 사람들을 위한 전체 이름이며, 구원의 토대인 믿음 소망 사랑을 지니고 있다. 각각의 단체, 민족, 지역으로 분열되는 기독교의 분열성은 열등한 현상이다. 교회는 스스로 교회가 되지않고, 구원을 통해 이루어진 기구이다. 하나님은 교회 없이 교회 밖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이다. 교회를 과대포장하지도 그렇다고 경시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교회의 중대함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의 활동에 대한 높은 수준의 유기적 통합으로 부터 비롯된다.  형제들은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차이를 없애려고 하지 않았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장소만이 아니라 보편성과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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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바른교회인가?” 프로테스탄트를 출현시킨 이 질문은 불행하게도 개혁파들 내부 분열의 근본적 씨앗이 되었고 오늘날 수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분열로 나타난다. 유럽에서 17세기 30년 기독교 종교전쟁은 지역과 민족의 경계선과 함께 프로테스탄트 교회 분열을 고착시켰으며, 1차 2차 세계대전의 격동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 교파와 민족의 문제를 분리시킬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되었다. 이 분열의 역사적인 원초적 짐을 지고있는 유럽개혁교회들에게 교회 일치는 내적으로 중요한 신앙의 씨름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교회는 세속사회에게 “거룩한 공동체”가 아닌 세속의 “기관”들 가운데 하나로 비추어지게되어, 탈기독교 더 정확히 말해 탈교회 현상이 진행되었다. 무엇이 바른교회인가? 오늘날 나의 모국교회 안에서도 이 질문이 여전하다. 교회의 본질에 비추어 개교회주의 교파주의의 모습에 대한 재숙고와 대안적 노력없이 다른 모든 신학적 실천적 노력으로는 교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없고 오히려 그 반대로 현재의 문제를 더 왜곡 시킬 수 있다.

(참고: 보헤미아 형제단 교회 규칙 1632)

One thought on “형제단(Jednota Bratrska)의 교회개념

  • ManGyoo Lee

    선교사님,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만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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