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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Text를 Context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한국목회사역연구소” 이사장이시고 또한 나의 절친인 이종만 장로님을 만나려고 그의 사무실(세계로이주공사)이 있는 강남역으로 갔습니다. 가까운 친구이지만 그의 사업과 선교(캄보디아) 등으로 인해 주로 미국에 채류하고 있어서 자주 만날 수 없었고 이번에 잠시 국내채류 중이어서 연구소 문제도 의논 할 겸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토요일이어서 사무실 공식 업무는 없지만 몇 가지 업무와 특히 나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에 나오고 나도 사무실을 찾아 간 것입니다.

승용차 보다는 전철이 더 편할 것 같아서 덕소역에서 전철을 타고, 왕십리에서 다시 수인분당선으로 환승하여 선릉역으로 가서 다시 전철 2호선으로 환승하여 강남역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사람들이 출근을 하지 않을 것이니 전철이 평안할 것으로 생각하여 전철을 선택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습니다. 오고 가는 모든 전철이 만원이었고 이 시골 경의중앙선 조차 만원이었습니다. 토요일에 사람들의 이동이 더 많고 외부 활동이 더 왕성하리라는 생각을 못한 둔감한 내 문화 감각이 문제가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일하기 위하여 오고 가는 사람들 보다 여가를 즐기기 위하여 오가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평일과 다르게 승객이 거의가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목회를 위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문화에 대한 이해라고 늘 강조해 온 나 자신의 현실 감감에 대한 문제를 다시 생각 했습니다. 목회는 Text를 Context에 실현하는 것이고 또 Context를 Text로 해석하여 길을 제시하고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Text)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그 Text를 적용할 현실(Context)에 대하여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그리고 Context를 Text로 해석하고 바로 세워가는 것이라고 남에게는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착각 속에 있었음을 심각히 반성하며 그 먼 거리를 차 안에서 이리저리 밀리면서 힘들게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목사가 아무리 Text(성경)를 잘 안다고 해도 말씀을 가르치고 인도할 성도들의 삶의 현장(Context)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들의 삶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그들의 삶의 현장을 바로 알지 못하고는 설교도 목회 지도도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복잡한 전철을 타고 가면서 노인의 처신 문제에 대하여도 생각을 했습니다. 장시간을 손잡이에 매달려 서서 가는데 문제는 어디에 서야 할지 설 자리도 문제였습니다. 노인석에 앉아서 갈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복잡한 전철 안에서 손잡이에 매달려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서서 가는데 오늘처럼 젊은이들로 가득한 전철에서는 설 자리도 잘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가 앉은 좌석 앞에 서 있으려니 꼭 자리 양보를 바라는 것 같아서 서로 불편 합니다. 아직은 한 시간 정도는 서서가도 별 문제가 없는데 젊은이 좌석 앞에 서 있으면 그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노인석 앞이나 양보해야 할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 임산부석 앞에 서서 가는데 이미 다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뚫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참 서 있는 것도 난감했습니다. 또 간혹 빈자리가 나도 냉큼 자리에 앉는 것도 망서려 집니다. 노인이 노인석에나 가지 왜 젊은이들 틈에 끼어 앉는가고 젊은이들이 불편해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참 나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좀 더 젊을 때, 몇 년 전만 해도 노인석에 앉는 것이 눈치 보이더니 이제는 젊은이 석에 앉는 것도 불편 합니다. 사실 어디 가든 노인들의 처신 문제는 참 조심스럽습니다.

교회에도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나이 많은 사람이 처신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노인 대접을 안 받으면 섭섭하고 받으면 미안하고. 목회자들의 이런 노인들의 입장을 잘 이해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 특히 교회들이 다음세대에 대한 관심은 많고 또 그래야 하지만 노인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 합니다. 요즘 마을 목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목회의 중요한 장르가 되어 있지만 사실 마을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인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어느 동네든지 동내의 여론은 노인들이 조성 합니다. 필자는 현직 목회시에 지역에서 교회 이미지를 높이는 결정적 방법으로 지역 경로당을 돌보는 사역을 했습니다. 지역 경로당을 돌보고 경로당 어른들을 교회에 모시고 월례 경로당연합예배를 통하여 교회의 위상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역사회 여론은 직장과 삶의 문제로 분주한 젊은이들이 아니라 노인들이 그 지역의 여론을 만듭니다. 그것은 지역의 정치적 여론 형성에도 결정정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흔히 보았습니다. 지역에서 교회의 이미지 형성은 노인들이 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나는 이사장님과 한국교회를 위한 우리 연구소의 역할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면서 교회의 문제, 목회의 문제, 그리고 목회의 구체적인 현장인 사회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한국교회를 돕자는 의논을 하였습니다. 교계의 주류세력들이 놓치는 소소한 문제들, 목회 현장의 가장 밑바닥의 문제들에 대하여 조언하는 글을 쓰고 나누자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아직 연구 모임은 활성화 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연구원들 각자의 신학적 시각으로 현실 문제에 대하여 진단하고 조언하는 “집단지성”을 통하여 한국교회를 돕자는 의견입니다.

사실 그 시작으로 오늘 이사장님과의 만남의 결과를 여러 이사님들과 회원들에게 보고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한국목회사역연구소장 이만규

ManGyoo Lee

현 신양교회 원로목사. 사단법인 안구기증운동협회 이사장 전 21C목회연구소 이사장.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목회정보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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